대상: 24세의 남자 C군

증세: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과 눈이 찔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젖꼭지가 물어 뜯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다한증은 심인성질환에 포함, 눈이 찔리거나 젖꼭지가 물어 뜯길지도 모르는 것은 공포증, 대인공포증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씩 2시간으로 1년 6개월째 치료를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서 심인성질환인 다한증과 눈이 찔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젖꼭지가 물어뜯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러나게 되었다. 다한증은 약물을 복용해 왔으나 치료가 1년을 넘어가면서 지금은 약물 복용을 하지 않고도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음

치료의 과정

C군은 대인관계 문제로 치료자를 찾아왔다. 그는 처음에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공익 근무 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같이 근무를 하는 동료들과의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시작하면서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 문제와 눈이 찔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젖꼭지가 물어뜯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의 공포증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치료 초반기에 밤이 되면 창가에 비치는 나뭇가지의 그림자 때문에 두려움으로 잠을 제대로 깊이 잘 수 없었으나 치료가 5개월 정도 지나가면서 밤에 잠을 자는 문제는 사라졌다. 다한증이 심할 때는 손에 땀이 흘러서 손을 물에 씻는 것처럼 주루룩 흘러내리는 정도가 되었고 인터넷에서 다한증을 치료하는 신경 정신과 의사의 치료 처방으로 약물을 복용하면서 약간 감소되었으나 계속해서 다한증은 계속되었다.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면서 다한증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심인성질환에 소속되어있다는 말을 듣고 수긍을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다한증이 심해진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C군의 어린 시절의 역사: C군은 유치원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했다. 유치원 때 찍은 칼라 사진첩을 가지고 와서 분석 치료 시간에 그 사진첩에 사진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부모님이 직접 찍어준 사진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불과 몇 장에 불과 했다. 그러나 유치원 때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찍어준 사진들을 사진 첩에 모아두고 있었다. 특별히 그는 유치원 시절에 동료들보다 인물도 뛰어나게 보이고 동료들의 리더로써 활동했던 모습들을 보면서 씁씁해했다. 그 때는 다른 동료들보다 뛰어났고 활동도 적극적으로 했던 사진들이 있었다. 연극 공연 활동을 찍은 사진에는 인디안 차림의 소품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던 때 동료의 어머니가 소품을 챙겨주어서 그 동료와 같이 소품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또 군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에는 그가 한쪽 양말을 싣지 않고 맨발로 있는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 한쪽 발을 뒤쪽으로 빼려고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어머니에게 분노하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다. 언제나 어머니는 있어야할 자리에 없었다. 유치원 때 찍은 행사 사진에는 어머니는 거의 없었다. 부모가 어린시절에 찍어준 사진이 거의 없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가족 사진은 거의 없었다. 동료들이나 선생님들이 찍어준 사진들이 전부였다고 울먹였다.

C군은 치료의 과정에서 어린 시절에 고통스러웠던 상처들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게 되어갔다. 그는 자신의 내면 속에 고통스러움이나 괴로움을 부모님에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유치원 때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찍은 단체 기념 사진을 선생님으로부터 받고 나서 그 사진을 들고 엄마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집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잠을 자고 있었다. 엄마에게 "엄마 이 사진을 보세요. 유치원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받아왔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으나 엄마는 계속 잠만 자고 반응을 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엄마는 아들 C군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모르는체 하고 잠을 자고 있었다. C군은 화가 나서 그 사진을 손으로 꼬짓꼬짓 짓뭉게 버리고 울면서 뛰어나와서 상점 앞에 걸려 있는 그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보면서 서 있었던 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엄마에게 그 칼라 사진을 보여주고 칭찬을 받고 싶었고 엄마에게 그가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그 장난감을 사달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 때 사진 첩을 보면서 그 꼬깃꼬깃 꾸겨진 사진이 사진 첩에 들어있는 것을 치료자에게 보여주면서 분노와 적대감정으로 치를 떨었다. "엄마, 엄마는 내가 유치원 시절에 항상 엄마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엄마가 없었습니다. 엄마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의 내면 속에서 울고 있는 어린 시절의 유치원 때의 자아가 울면서 C군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는 목소리를 듣도록 치료자가 도와주었다.

C군은 유치원 시절에는 한번도 유치원을 결석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언제나 유치원에 가는 것이 즐거웠다고 했다. 유치원 때 찍은 여러 장의 단체 칼러 사진 속에는 C군이 평소에 좋아했던 유치원 선생님 옆에 서서 찍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엄마는 없었고 대신에 유치원 선생님이 서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사진에는 그가 좋아하는 유치원 선생님이 원장 남자 선생님 때문에 C군 옆에 서지 못하고 떨어져 서 있는 것에 불쾌해 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행사 공연 사진에는 그가 역할을 담당했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C군의 유치원 시절의 칼러 사진들을 보면서 C군의 어린 시절의 삶이 총 천연색으로 채색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석을 해주었다. 그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유치원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다른 동료들보다 항상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행사와 공연에 참가했던 것을 회상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주식에 손을 대면서 가지고 있던 자택을 팔고 전세 집으로 들어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 때문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싸우셨고 아버지는 늘 술을 마시고 신체 한탄을 하는 것을 보면서 C군의 마음 속에 고통이 누적되어갔고 이런 가족 사이에 갈등과 고통은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으로 작동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노동일을 하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일을 했고 어머니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결혼을 하면서 공장에 다니느라고 C군의 양육에는 무관심이었다. 유치원과 자택이 불과 몇 미터였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C군의 유치원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었고 어머니도 유치원 행사에 거의 불참을 했다.

 C군은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온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것이 단지 두 번 박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은 어린 시절에 온 가족이 모여서 같이 라면을 끓인 것을 같이 먹는 기억이었고 나머지 한 기억은 아버지가 집을 주식으로 날리고 전세 집에 이사를 가던 날 아버지와 함께 가족들이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던 기억이 전부였다. 외식을 하면서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서 신체 타령을 하고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와 C군은 음식만 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불쾌한 얼굴 표정이었고 가족들은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C군의 가족들 사이에는 서로 말이 없었다. 그냥 밥먹어라, 이것해라 라는 말 이외에는 서로 말이 없었다. C군은 자신의 내면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들을 말로써 표현하는 능력에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는 치료의 과정에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내면 욕구와 상상들을 표현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했다.

 C군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부터 고통스러운 가족들로부터 독립해서 집에서 나오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혼자서 나와서 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의심을 했다. 혼자서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자신감이 없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이름있는 대학에 합격을 했으나 학교를 휴학하고 쉬면서 군복무를 마칠 생각으로 공익 근무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군 복무를 하면서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고 군 복무가 끝나면서 6개월 동안 수능을 다시 치려고 공부를 하다가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 않게 되자 학교에 복학을 하려고 결심을 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는 서울에서 혼자서 원 룸에서 생활할 돈을 벌기 위해서 3개월 동안 컴퓨터 방에서 야간 일을 했다. 이후에 서울에서 원룸을 구해서 이사를 했고 일자리도 구했다. 일을 하면서 대학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으로 심리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다.

C군은 어린 시절의 기억의 회상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엄마에게 유명한 사람들의 전기 전집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C군의 성화에 전집을 사 왔었으나 그 전집은 C군이 요구한 그 전집이 아니고 유치원 어린이들이 보는 전집이었다. 다시 엄마에게 바꾸어달라고 했으나 엄마는 아무거나 사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에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이 기억을 회상하면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분노를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많은 책들을 읽었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번은 세계적인 미술가들의 전기책을 사서 읽다가 명절이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갈 때 그 책을 가지고 갔다고 잊어먹고 온 것을 알 게 되어 다시 그 책을 새로 서점에서 사서 읽었던 기억들을 이야기했다. C군의 다양한 방면에 걸친 독서는 지식은 머리 속에 넣어서 저장된 것으로 끝이났다. 그는 책을 읽었던 것들을 동료들이나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에게 졸라서 한계례 신문을 3년 동안 구독을 했다. 그는 신문을 통해서 다양한 시사 교양 지식을 넓히기로 마음을 먹고 신문을 열심히 구독을 했다. 또 그는 야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야구 선수의 특징, 타율, 외국 야구 선수들의 이름들을 잘 알고 야구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이야기를 하는 소재로 사용한 적이 없었다. 치료자는 C군에게 인간이 수 많은 경험을 하고 공부를 통해서 지식들을 쌓아가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함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재로 사용하고 내가 살아가는데 내 자아의 지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C군은 이렇한 좋은 지식들을 머리 속에 넣어 놓고 사장해서 죽은 지식이 된 것을 지적을 했다. 대인관계에서 C군은 어떤 말을 할 것인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바로 자신이 경험하고 알고 있는 지식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대인관계의 소스가 아닌가! 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최근에 서울에서 생활을 하게 된지 2개월 만에 어머니가 누나와 함께 C군이 살고 있는 원룸을 방문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C군은 어머니와 누나의 방문이 환영을 할 수 없으면서도 No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지방에서 밤 열차를 타고 서울에 새벽에 도착을 했다. C군이 새벽에 마중을 나가서 함께 차를 타고 왔다. 어머니는 C군의 원룸에서 피곤하다고 하며 6시간을 잠만 자고 오후에 바쁜 일이 있다고 하며 누나와 함께 떠났다. 가족이 세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눈 시간이 없었다. 몇 마디 인사를 한 것이 고작이었다. C군은 이번 만남에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이 휴유증으로 C군은 3주일 동안 휘청거리면서 이 휴유증에서 회복하는데 엄청나게 대가를 치루었다. 그는 단지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하는 6시간 동안에도 이렇게 고통스러웠는데 집에서 나오기 전에 약 20년간을 같이 살았던 고통은 어떻했겠는가! 지금까지 그 고통스러움을 참고 살아온 자신의 자아에게 미만하고 그러한 껄끄러움을 외면하고 서로 말이 없이 타인처럼 4명의 가족이 함께 살아온 자신의 과거의 시절을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느끼고 깨닫기 못하고 한 집에 살아왔던 것이 어디가 잘못된 것인가를 느끼고 감지하고 깨닫고 있는 자신의 새로운 자아의 성장을 보도록 했다.

어머니는 C군을 방문하기 위해서 이번에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서 평생에 처음으로 기차를 타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C군에게 당분간 생활이 안정되어질 때까지 매달 생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해 달라는 C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은행에 가서 C군에게 돈을 송금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폐쇠적인 생활 방식은 C군이 공익 근무를 하고 있었던 몇 년 전에 C군이 대형 슈퍼마겟에 갔을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당황해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하는 모습 즉 슈퍼마겟에 가면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주워 담아서 카운데에서 계산을 하는 행동들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따라서 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치료자가 지적을 해 준 것은 어머니는 평생동안 자신의 자아 안에서 갇혀서 폐쇠적인 생활을 해 왔고 이것을 C군이 동일시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데 어머니를 유사하게 닮아있는 모습을 보도록 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모습 즉 자아 안에서 갇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피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자아의 모습을 이번 기회에 깨뜨리고 서울에 올라 와서 집도 구하고 직장도 구하고 생활 비용을 스스로 벌어서 살아 가고 있는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스스로 힘주어 말을 했다. 자아가 그 만큼 성장을 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어린 시절 유치원의 자아가 발달이 중지된 것을 새로 성장시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동일시한 자아의 틀을 깨고 과감하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치료를 받으면서 배운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C군이 치료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나가면서 그는 기말 시험이 다가 오는 6월 초순에 5개월 동안 치료를 중단했다.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 해 보고 싶다는 제안에 의해서였다. 5개월이 지난 후에 10월에 다시 치료를 재개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치료는 10월 달에 다시 시작 되었다. C군의 2년 6개월의 치료의 과정을 상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