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27세의 미혼 남성 Z씨

증세: 초등학교 때 4년간 거지 공포증으로 중학교 때는 성모 마리아 상의 눈에 대한 6개월 간의 공포증, 대학 때까지 야뇨증으로 고통을 받았음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와 치료자의 저서 "나"(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서점에서 사 보고 나서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거지 공포증과 시선 공포증은 불안장애 속에 들어가고 야뇨증은 심인성질환 속에 포함

치료 기간: 1주일에 1회 2시간 분석 상담 치료를 3년 6개월째 받고 있음

치료의 결과 : 야뇨증, 거지 공포증, 시선 공포증 등은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등장을 했으나 이미 그 문제는 방향이 바뀌어 불면증과 심한 불안증과 강박증, 공포증 등으로 바뀌었고 2년 6개월 간의 치료 과정을 통해서 문제들은 거의 해결 단계로 접어들고 있음. 치료가 3년 6개월을 지나가면서 Z씨에게 많은 긍정적 변화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래의 치료 과정은 2년 6개월부터 3년 6개월까지의 치료 과정이 소개되어지고 있다.

 

치료의 과정:  

 Z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집을 나와서 혼자서 살 게 된 지가 3년이 넘어가고 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한 후에 6개월 시점에서 치료자는 Z씨에게 집에서 나와서 독립을 할 것을 조언을 했다. 부모님 밑에서 간섭과 침투로부터 벗어나고 독립심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사람은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은 부모님과의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계속 좋게 만들어 가면서 자치심을 기르는 것이었다.

 부모님 집에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방문을 했다. 가족 행사나 제사 등에 장남으로써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Z씨에게 언제 집에 들어올 것인가를 물었다. 알토란 같은 돈이 한달에 35만원씩 들어가는데 집에 들어오면 그 돈이 절약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Z씨는 절대로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비록 한 달에 고시 방에 월세가 35만원씩 들어가지만 내가 받은 심리적 위안을 350만원 이상 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게 했다. 돈이 중요한지 아들의 심리적 건강이 더 중요한지를 깨닫게 했다.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에게 늘 긴장하고 간섭을 받고 침투적으로 느끼는 것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질식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분명히 표현을 하도록 했다. 2009년 설날에 집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Z씨에게 집에 들어오라고 최후의 명령을 했다. 집을 나가서 혼자서 식사를 하니 건강도 좋지 않고 돈도 절약이 된다는 이유를 붙였다. Z씨는 단호하게 자기 주장으로 거부를 했다. 논리적으로 아버지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부터 늘 나에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머니는 여동생들에게 "너희 오빠는 혼자 살아가기 어려우니까 너희들이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뜻이 바로 내가 혼자 독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독립하라는 말이 아닙니까? 내가 집으로 나온지 2년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내 건강이 여러 면에서 좋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정기 건강 검진에서 내 몸무게가 8kg이 늘어났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고 그리고 갑상선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의사 선생님이 놀래면서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내가 혼자 살면서 그 만큼 심리적으로 편안해졌다는 뜻이지요. 이제 집에 다시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일부러 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식사 때마다 나에게 강제로 밥을 먹게 했습니다. 어떤 때는 밥을 억지로 먹어서 속이 꽉 차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때 화장실에 가서 토해 내고 다시 밥을 계속해서 먹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내가 집을 나가면 몇 개월이 되지 못해서 짐을 싸들고 집에 다시 되돌아 들어올 것이라고 어머니가 말씀을 했지만 이제 2년이 넘어서 3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고시원에서 생활로 이제는 더욱 더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내가 마음 편하게 식사를 만들어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내 몸이 이렇게 좋아진 것입니다. 한 달에 고시원 비용으로 35만원이 들어가지만 그 돈은 나에게는 350만원 아니 3500만원의 가치가 있습니다. 내가 얻는 심리적 도움은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습니다. 이제 다시는 나에게 집에 들어 오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요."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등을 소신있게 당당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보고 계신 어머니는 아들 Z씨와 논쟁으로 말이 막히게 되자 아버지가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왜 피해서 밖으로 나가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이후에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조용해 진 이후에 어머니는 Z씨에게 "네가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헛돈을 쓴 것이 아니었구나! 아버지와 다툼에서 밀리지 않고 끝까지 너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고 내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라고 표현을 했다.

 이 이벤트 직후에 Z씨는 치료자에게 그 다음 치료 회기 시간에 이제는 아버지를 쳐다볼 수 없는 불효자가 되었다고 두려워했다. 이유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대들고 아버지의 말을 거부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라왔다.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가게되면 자녀들을 자신의 부모님이 다른 부모님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의 하는 말과 행동이 모두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라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자녀들을 부모님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부모님이 자녀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자녀의 의견이 옳다면 수용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목소리를 내면 "지금까지 먹여주고 입혀주었더니 이제는 머리가 크다고 부모님에게 눈을 부라리고 달려들어 이놈아!" 라고 표현을 해서 자녀들의 목소리를 막아 버린다. 심하게 처벌을 하면 자녀들을 목소리를 내지 않고 반대행동으로 반항을 하게 된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처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를 처벌을 할 수가 없다. 패륜아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녀들도 부모님을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 처벌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거꾸로 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부를 강조하는 부모님에게 자녀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착한 행동을 하지 않고 불량 행동과 나쁜 행동을 골라서 하는 것이다. Z씨는 부모님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리고 나서 두려워했다. 이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 치료자는 Z 씨의 자아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부모님에게 자신의 느낌, 지각, 상상, 생각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을 반항이 아니다. 부모님과 의견 일치를 보이지 않는 자녀의 의견은 반항이 아니고 서로 자신의 주장을 내 세우고 논쟁을 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신이 아닌 이상 언제나 100% 옳다고 할 수 있는가! 자녀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 부모님에게 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효가 아니다. 부모님 앞에서 내 소신을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직장에서 상사에게 소신을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부모님 앞에서 내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힐 수 없다. Z씨는 이후에 부모님을 만났을 때 미안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했다.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소신을 이야기한 것을 자랑스러움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이후에 이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아버지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자녀인 Z씨를 이제는 성인으로 어른으로 대우를 해 주었고 이후 부터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명령어는 사라지고 Z씨의 의견을 물어보는 쪽으로 대화의 패턴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었다.

 Z씨는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2007년 4월에 자신이 좋아하던 그림그리기(만화, 일루스트레이트)를 포기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1년 6개월째 하고 있었다. 그 때 마지막으로 복지사의 마지막 과목인 "복지 실습"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께서 그림을 그리면 먹고 살기가 어려우니 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취직을 해라고 강압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는 복지사 실습으로 어떤 복지회에 아침 7시 30분에 도착을 해서 저녁 9시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복지사의 일들은 노인들의 식사와 빨래, 노인들을 돌보아주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신체적으로도 연약해서 에너지의 고갈을 느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나면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었다. 노인들이 짜증을 내거가 화를 내면 그것을 받아주어야 했다. 그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지 않았다고 치료자에게 푸념을 했다. 그러나 부모님 때문에 거부를 할 수 없었다. 치료자는 단호하게 부모님에게 거부하도록 했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도록 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평생동안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는 부모님에게 No라고 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에게 언제나 복종을 강요받았기 때문이었다.

 Z씨는 사회 복지사 실습을 끝내고 자격증을 받고 사회 복지사는 포기를 했다. 적성에 맞지 않고 에너지 고갈을 느낀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고 집을 나오면서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림 공부, 만화 그리기와 일루스트레이션을 마음 껏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생활에 리듬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음식 매뉴를 짜고 수면을 컨트롤하기 시작해서 이제 2년이 지나가면서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이었다.

 Z씨는 한번씩 저녁에 잠들 시간이 되면 과거에 부모님 특히 어머니께서 언어 폭력에 시달린 것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가 사회 복지사를 하기 전에 그는 대학 1학년 때 전공인 경영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대학 만화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만화 동아리가 지나치게 이념적이고 데모를 선동하는 내용을 강요하는 바람에 대학 동아리에서 탈퇴하고 스스로 자발작으로 모인 만화 동아리를 다른 대학에 연결해서 만들었다. 그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화 학원에 다녔다. 그는 만화 학원 비용으로 3개월 동안은 어머니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어머니가 만화를 그리면 밥굶어 죽는다는 말에 더 이상 비용의 지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차비 점심값을 아껴서 충당을 했다. 만화 학원에서 아침 일찍 출근을 해서 저녁 마지막 퇴원시까지 원장 선생님과 함께 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몰두를 했다.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했다. 그는 만화 그리기에서 우수하게 수료를 했고 그 다음에 한계례 신문이 지원하는 일루스트레이션의 그림에 1년 동안 습작 과정을 수료했다. 거기에서 모인 동료들과 1년 넘게 서로 교류를 하면서 동아리를 유지하다가 몇 년 전에 비용 문제가 그 써클이 해체되면서 서로 뿔뿔히 흩어졌다. Z씨는 만화를 그리는 회사에 취직을 했다가 1년 만에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에 어떤 출판사로부터 100만원의 계약으로 어린이 용 서적에 일루스터레이션을 100장을 그리는 일을 얻게 되었다.

 그는 만화 그리기를 전공해서 처음으로 100만원짜리 그림그리기 일감을 따 왔다며 어머니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그러나 어머니는 그까짓 100마원짜리 일감을 따 왔다고 유세냐!고 빈잔을 했다. 오히려 그 당시에 첫째 여동생이 결혼해서 낳은 둘 째를 데리고 와서 외삼촌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이후에 조카들이 커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큰 아이 5살 짜리와 3살 짜리 둘 째를 대리고 와서 Z 씨에게 맡겼다. 낮에 데리고 와서 어머니는 외출을 하고 Z 씨가 두 아이들을 돌보아주도록 했다. Z씨는 기가 막혔다. 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1달 안에 그림을 그리기를 완료하지 못하면 위약금으로 2배를 물어야 한다고 싸인을 했다. 그가 15일이 지나갔을 때 40% 정도밖에 완료되지 않았다. 울면서 겨자 먹기로 그는 낮에는 조카 둘을 보고 할 수 없이 부모님에 밤에 잠을 잘 때 밤샘으로 그 출판사에서 위탁을 받은 그림을 그렸다. 부모님은 한번식 화장실에 가면서 Z씨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노발대발하면서 전기세가 많이 나간다고 호통을 쳤다. 그는 할 수 없이 전기불을 끄고 촛불을 켜고 창문을 이불로 가렸다. 이렇게 해서 밤샘을 하고 나니 에너지 고갈로 이어졌다. 낮에는 조카들을 돌보고 밤에 밤샘을 하는 15일 동안의 고역으로 겨우 100장을 정해진 기간 내에 완성할 수 있었다. 이런 심리적 상처로 받은 고통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이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에 약 3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었다.

 치료에서 이러한 고통, 분노, 노여움 들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심리적 상처나 고통을 부모님이나 친구나 가족들에게 누구에게도 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러한 과거의 상처들이 하나씩 다루어지면서 점점 잠을 잘 잘 수 있게 되어갔다. 마음이 안정을 가져와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 할 수 있었다. 그는 한번씩 그림을 그리다가도 이러한 잡 생각에 빠지면 몇 시간 동안 그림그리기에 몰두를 할 수가 없었다.

 치료가 3년에 접어 들어가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Z씨가 이사를 나온 후에 어머니가 한번도 그의 고시방에 들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머니가 Z씨를 방문하겠다고 연략이 왔다. 그는 방을 청소하고 정리 정돈을 했다. 어머니가 찾아와서 고시방을 둘러 보면서 여러 가지 질문들을 했다. 혼자 살기에 어려움이 없는지, 그리고 식사를 잘 챙겨 먹는지, 건강을 잘 지키는지 등에 대해서 Z씨는 과거와는 달리 자신의 생각, 느낌, 지각, 상상 들을 소상하게 논리적으로 상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가 3년 동안이나 한번도 이사 후에 지금까지 Z씨를 찾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 그리고 막내 여동생이 출가하고 난 후에야 이제 서야 Z씨를 찾아온 점들을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식사는 고시원에서 밥과 김치와 달걀을 제공해주고 자신은 먹고 싶은 몇가지 반찬을 준비해서 잘 먹고 있으며 몸무게가 8 kg이 늘어났고 혈압과 갑상선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칭찬을 해 주셨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만화, 그림 그리기, 일루스트레이션의 전망에 대해서 물어보았을 때 만화, 에니메이션 등에서 우리나라가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분야에서 판타지 영화 등이 출편하는 것으로 앞으로 전망이 밝다고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엄마와 직면으로 자신있게 자기 주장을 한 이후로 엄마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엄마는 Z씨를 항상 불안하고 보았고 늘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Z 씨를 걱정해 왔었다. 그러나 이 이벤트 이후에는 Z씨는 한 성인으로 대우를 해 주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Z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명령 형의 대화가 아니라 Z씨의 의견을 물어보는 일대 일의 성인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이후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다시 아들 Z씨를 집으로 들어와서 살아라라는 말을 지원해 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시방이 너무 왜소해서 작업하기에 불편하니 원 룸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원 룸을 추천해주게 되었다.

 결정적인 변화가 지난 여름에 왔다. Z씨가 지금까지 자신의 그림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게 되면서 이 그림이 그 달의 대표 그림으로 선정되어진 것이었다. 일루스트레이션 전문 잡지에서 Z씨의 그림을 그 달의 대표 작으로 선정해서 올리게 되었고 몇 개의 출판사에게 연략이 왔다. 한 출판사는 Z씨에게 어린이 동화를 그려주면 그 작품을 그 회사가 인터넷에 게시를 해서 유료로 어린이들이 접근해서 얻는 수익을 6: 4로 그에게 돌려 주겠다고 했고 Z씨는 승낙을 하고 어린이 동화 중에서 "금도끼와 은도끼"를 그림으로 그려서 그 출판사의 감독 교수의 심사에 통과한 마지막 12장을 출판사에 제출하게 되었다. 또 다른 한 출판사에서 회사 광고 용으로 Z씨가 그린 일루스트레이션을 제출해 줄 것을 제의를 받고 허락을 했다. 또 한 군데 출판사에서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그 회사는 3년 전에 100만원의 그림 계약을 준 그 회사였다. Z씨는 지금 아이들 동화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이것이 끝나는 10 중순에 다시 연략을 하겠다고 허락을 했다.

 그는 지금 경제적 독립만 하면 이제는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은 이제 Z 씨가 집을 방문하면 과거처럼 불안하게 Z씨를 취급하지 않고 독립된 성인으로 대우를 해준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이제는 부모님과 일대일로 대화에 참가를 하고 자신의 의견을 상세하게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부모님에 매년 마다 고향의 시골에서 열리는 가을 시제(조상에게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추수 감사절 풍습)에 참석하지 않겠느냐?고 전화로 물어 왔다. Z씨는 초, 중, 고, 대학 그리고 어른인 최근까지(치료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한 그 해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서 고향 시골에서 개최되는 시제에 참석을 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갈 때마다 시제에 참석하고 오면 그 휴우증으로 고통을 몇 주일씩 당했다는 것이 분석 되어졌다. 시제에 참석으로 부모님을 따라가면 부모님은 언제나 빨리 걸어갔다. 어린 Z씨는 부모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특히 어머니는 Z씨에게 "이 병신 같은 놈아 사내가 되어서 부모님보다 빨리 앞서 가야지 뒤에서 따라오면 어떻하냐!"라고 빈잔으로 Z씨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시제에는 Z씨의 또래는 없고 모두가 나이 많은 어른들이어서 그는 할 일이 없이 멍하니 쳐다 보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가는 곳마다 저애 때문에 내가 골병이 들어 죽을 지경이다라고 푸념을 했다. 나이가 어려서 짐을 들지 못하면 너는 왜 짐도 제대로 들고가지 못하냐고 빈잔과 비난이 따라왔다. 고향으로 내려갈 때 대형 버스 안에서 언제나 Z씨는 외톨이로 혼자 앉아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고향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만취해서 노래를 부르자 버스 운전수와 승객들이 아버지에게 조용히 해 달라고 요구를 하자 미안해진 어머니는 다른 자리로 도망을 가고 Z씨가 아버지 옆에서 아버지를 돌보아주게 했다. 아버지는 막무가네로 고성방가를 했다. 모두가 얼굴을 찌푸리고 야유를 했고 아버지는 마침내 버스 안에서 토해냈고 차장 아가씨가 불평을 하면서 신문지로 딲아 냈다. 그러한 버스 안의 모든 승객들의 야유와 수모를 아버지 옆에서 Z씨가 고스란히 당했다. 어머니는 도망을 갔고 Z씨를 어머니 자리에 밀어넣은 것에 분노했다. 이러한 과거의 상처 기억들을 재연해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게 했다. 그의 내면에 쌓인 적대 감정의 한 실오라기가 또 다시 풀리어져 나왔다.

 이 이벤트를 상기하면서 Z씨는 아버지에게 이제 시제(가을에 시골에서 조상에 추수 감사로 제사를 올리는 풍습) 참가는 지금까지 많이 참석했으니 유보하겠다고 자신있게 소신 것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초, 중, 고, 대학 이후에 몇 년 전까지 아버지가 요구하는 시제에 참석을 했고 시제 이후에는 그 후유증으로 몇 주일 동안 자신감의 저하로 고통을 받아 왔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Z씨가 장손이기 때문에 참가를 해서 아버지가 죽고 나면 대를 이어 받아야 한다고 늘 강조해 왔다. 그러나 Z씨는 이제까지 수십번을 참가하고 보아왔기 때문에 이제 그 문제는 혼자서 시제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아버지에게 자신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이번 시제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 이벤트에서 다시 과거의 이벤트가 줄줄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Z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엄마로부터 용돈을 받아서 그의 회상으로 약 2천원-3천원 정도를 받았으나 한번은 그 돈으로 껌을 하나 사서 씹고 있는 것을 어머니가 보고 돈이 어디에서 나왔으냐 엄마는 죽도록 돈을 벌고 있는데 너는 돈을 아낄 줄도 모르고 껌을 사서 씹고 있느냐고 노발대발 해서 그 용돈을 도로 빼앗아 갔다. 이후에 중학교 시절에 또 한번은 용돈으로 과자를 사먹었다가 들켜서 용돈을 도로 빼앗겼다. 엄마는 늘 "땅을 파보아라 돈 100원이 나오느냐!"고 빈잔을 주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3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가 한번은 Z씨가 좋아하는 비디오를 1000원을 주고 빌려보다가 어머니에게 들켜서 용돈을 도로 빼앗겼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있었던 이 이벤트 이후부터 엄마는 교통비와 점심값을 계산해서 그 돈만 주었다. 대학교 3학년 때까지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에 전공학과 모임이나 동아리 모임 때면 서로 몇 푼씩 돈을 각출하는 곳에는 피하게 되었다. 돈을 각출당하고 나면 차비나 점심값에서 제외되어 굶거나 걸어서 다녀야 했다. 이런 생활 때문에 사회적 모임이나 대인관계를 극구 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이런 고통이나 고충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대학 3학년 때 어머니는 자녀들의 돈을 혼자서 관리를 포기했고 아버지에게 맡기게 되었고 아버지께서 한달에 용돈으로 10만원을 받았 것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이러한 이벤트을 다시 재연해서 Z씨로 하여금 감정을 표현하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어머니 용돈은 내 개인적인 소유입니다. 내게 용돈으로 주었으면 내 권리를 인정하셔야지요. 내가 그 돈으로 낭비를 했습니까? 껌 한 개 사먹고 과자 한 개 사먹었다고 그 돈을 빼앗아 갑니까? 그리고 내가 보고 싶어서 비디오 테이프를 한 개 빌려서 보았는데 내가 용돈을 낭비를 했습니까? 그렇다면 왜 용돈을 주셨나요? 나는 대학 생활에서 용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돈은 교통비와 점심값을 계산해서 정확하게 주셨기 때문에 나는 동료들과 모임이나 회식 등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각자가 돈을 각출해서 분담을 하면 나는 굶거나 차를 타지 못하고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용돈을 준 것이 아니고 나에게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이지요. 내가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표현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했다.

 

이론적 근거

 Z씨는 부모님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착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으로 부모님에게 No라는 말을 해 본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의 불안을 Z씨에게 화풀이를 해 왔다. 그들이 불안할 때는 언제나 만만한 Z 씨에게 퍼부었다. 3명의 여동생들은 Z씨와 달랐다. 그들은 부모님이 강압적으로 청소를 강요할 때 부모님의 요구를 무시했다. 아버지를 강박증 환자라고 그들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시키는 과도한 요구를 거절했다. Z씨가 미술, 그림그리기, 만화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그가 고등학교 때 만화 그리기를 하고 싶었으나 포기했다고 했다. 만화를 그렸다면 밥을 굶었을 것이고 지금같이 공무원으로 그리고 세무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Z씨를 막아서 고등학교 시절에 만화를 그리겠다는 Z씨를 막았다. 아버지는 만약에 만화가가 되려면 정식 미술을 전공해야 하는데 Z씨는 전공하지 않아서 전문가가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막내 여동생은 예술 고등학교를 나와서 미대를 졸업을 하고 일본에 1년간 연수를 하고 돌아와서 결국은 만화 회사에 다니고 있고 올해 5월 달에 같은 만화 회사에 근무를 하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결국 그렇게 싫어하는 만화가 사위를 보았고 미대를 나온 딸이 만화가로써 생업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Z 씨는 분노했다. 왜 자신이 그렇게 원했을 때 전공을 미술을 하지 않았다고 반대를 해 놓고 정작 막내 여동생은 만화를 하게 허락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우리는 양면 감정을 가지는 것이 정상이다.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다면 부모님에게 미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이것이 분열되어 쪼개져 있는 것이 Z씨였다. 부모님에게는 좋은 긍정적 감정을 Z 씨 자신에게는 부모님의 비난, 비판, 비하 등으로 나쁜 감정들은 Z씨 자신의 자아로 향해왔음을 깨닫게 했다. 이 양면 감정을 통합하는 과정을 심리치료에서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 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에게는 복종을 강요하면 Z씨처럼 자신감이 없고 자치심이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사례는 이미 Z씨의 여동생들은 자신의 주장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 결과 여동생들은 세명이 모두 결혼을 했고 Z 씨는 아직도 힘들어 하고 있고 결혼을 하지도 못하고 이성 교제도 아직은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게 했다. 부모님에게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면 불효 자식이라고 일찍부터 각인이 된 Z씨는 너무 큰 양심 (초자아--정신분석) 때문에 부모님에게 자신의 생각, 느낌, 상상, 지각을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것은 어머니가 어린 시절부터 Z씨를 처벌의 대상으로 엄마의 화풀이 대상으로 엄마의 불안감의 방출 대상으로 삼아왔기 때문임을 Z씨가 깨닫게 되면서 Z씨의 감정 표현 능력은 성장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치료의 결과

 Z씨는 처음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을 때 서점에서 치료자사 쓴 저서 "나"(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을 읽고 치료자에게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기로 마음 속에 결심을 했다. 그는 이번에 마지막으로 심리치료가 실패하면 자살을 결심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통과 불안과 분노 속에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마지막 선택으로 심리치료를 선택을 했고 치료 시작 4년이 가까워 오면서 이제는 잠을 숙면으로 잘 수 있게 되었고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고 건강 관리와 자신의 생활을 컨트롤할 수 있고 자신이 그렇게 원하는 그림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이제 점점 향상 되어가고 있음을 기뻐라고 치료자를 만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Z씨의 심리치료 비용은 아버지가 부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Z씨는 아직까지 경제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달마다 생활 비용과 치료 비용을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까지 약 4년 동안 한 번도 심리치료는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 받는 것이 어떠하냐? 라고 치료비 지불을 거부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점이다. 심리치료에서 아들 Z씨의 치료 효과를 아버지, 어머니가 인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논쟁에서 Z씨가 끝까지 밀리지 않고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대견해 하고 아들에 대한 미래의 불안이 감소했다고 이미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네가 아버지와 논쟁에서 밀리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을 보고 심리치료를 받은 것이 헛대지 않았음을 느꼈다"라고 말을 것이 회상되었다. 지금도 Z씨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자신의 심리치료 시간에 한번도 빠짐이 없이 3년 6개월의 마지막까지 약 4년 동안 열심히 치료를 받고 있다.

 Z씨가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서 그가 5년 6개월의 치료 계약이 시작되면서 그의 변화의 과정을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그의 자아는 계속해서 성장을 하고 있어서 치료 시작 때의 초반기 문제들은 거의 해결 단계에 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