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37세의 고등학교 교사인 B씨

증세: 위가 쓰리고 소화가 잘 안되고 더부룩하고 명치 끝이 아프고 목과 어깨 근육이 절리고 따끔거리고 두통이 있을 때는 머리가 하얂게 변하는 것 같고 호흡이 거칠고 심장이 빨리 뛰어 죽을 것같다고 호소함

접촉: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보고 메일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치료를 요청해 왔음

진단명: 일반화된 불안 장애, 공황장애, 심인성질환 소지자

치료 기간: B씨는 심한 공황장애로 1년간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 후에 공황장애는 사라졌으나 죽음 공포증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위와 같은 증세 즉 증세 부분에서 언급한 생리적 현상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6개월간 치료를 계속하게 되었음

치료의 결과 : 1년 6개월 간의 치료 후에 B씨는 위가 쓰리고 소화가 안되고 명치 끝이 아프고 목과 어깨 근육이 절리고 따끔거라고 두통이 오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것 같고 호흡이 거칠로 심장이 빨리 뛰는 죽음 공포증을 사라졌다.

 

치료의 과정

 B씨는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사람으로 1년 동안의 치료의 과정은 공황장애 파트에서 잘 설명되어있으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공황장애는 치료가 시작된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나 계속되는 심한 불안증의 생리적 현상은 사라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공황장애가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해서 불안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치료 1년이 지나가면서 다시 뿌리를 뽑겠다고 6 개월의 치료 기간을 연장했다.

 B씨는 어느날 치료자에게 자신의 꿈을 가지고 왔다. 그 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B씨가 어느 상가집(초상난 집)에 갔는데 영정 사진(죽은 사람의 초상화 사진과 위패가 모셔져있는 곳에)이 두 개가 있었다. B씨는 그 영정 사진을 얼핏 보았는데 한 개는 어른의 영정 사진으로 자신이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이었고 나머지 다른 한 개의 영정 사진은 어린 소녀의 영정 사진이었다. 영정 사진을 처다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소녀의 영정 사진에서 어떤 소녀가 나와서 B씨를 잡으려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B씨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을 가다가 깨어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서 시각을 보니 새벽 3시였다. B 씨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자신이 죽을 것을 예언하는 꿈이 아닌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저승 사자가 아닌가? 하는 공포속에서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생각을 해 보았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은지 1년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꿈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꿈은 저승 사자가 자신을 잡으러 오는 꿈이 아니고 틀림없이 어린 시절에 이 꿈과 연결되는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꼼꼼히 생각을 하느라고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치료실에서 어린 시절에 그 꿈과 연결되는 이벤트가 생각나는지 상상을 연결해보라고 했을 때 B씨는 잠에서 깨어나서 혼자서 생각을 해 보니 중학교 2학년 혹은 3학년 때 쯤에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불공을 드리려고 갔었는데 그 때 그 절에는 소녀의 영정 사진이 있었고 그 때 그 소녀가 예쁜 얼굴이어서 자신과 한번 사귀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그 때 B씨는 사춘기의 소년이었다. 그 순간 그 소녀가 귀신이 되어서 자신을 따라다니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고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또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무례를 범한 것 같아서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절 마당으로 나오는데 그 생각에 잠겨서 앞을 보지 않고 큰 느티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고 했다. 머리 통을 얻어 맞고 나서 B씨는 자신의 부정한 생각 때문에 부처님이 그 생각을 알고 벌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B씨는 지금도 나이가 42세인 중년 어른이 되었는데도 상가집에 가면 절대로 영정 사진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영정 사진을 보면 죽은 귀신이 자신을 따라와서 괴롭힐 것이라고 두려워한다고 했다. 또 영정에 관계된 상상들을 생각나는데로 이야기해 보라고 했을 때 B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쯤에 같은 동네에 사는 6촌 형님이 동무들과 장난을 치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돌에 부딪쳐서 뇌를 다쳐서 1년 6개월 동안 방안에 누워서 말라죽어 가는 모습을 본 것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 외에도 B씨는 중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1년 동안 위패와 영정 사진을 모셔놓은 빈소에서 아침 저녁으로 할아버지에게 밥을 올리는 것을 주로 어머니가 하나가 한번씩 B씨에게 밥을 갖다 놓으라고 심부름을 하면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겁이나서 쳐다 보지 않으려고 했고 쳐다보면 등골이 오싹하게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음을 기억해 내었다. 이후에 1년 후에 탈상을 하고 빈소를 철거한 후에도 할아버지 영정 사진은 창고에 넣어 두었는데 한번씩 창고에 들어갈 때면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고 놀라는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 외에도 죽음 공포는 B 씨를 따라다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에 공황장애 공격이 있기 1년 전 쯤에 지금부터 약 4년 전에 B씨는 장모님의 아버지 즉 처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시신은 다른 곳에 모셔져 있으나 손님 접대 때문에 빈소를 마련한 곳에서 3일간 부인과 4살 아들과 같이 지내는 동안에 귀신이 따라붙지 않을까 두려워한 것을 기억해 냈다. 이후에 고향에서 친척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1달 후에 공황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공황공격을 받고 나서 1년 후에 시골에서 투병 생활을 하시던 할머니가 88세로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위기 시에 몇 번이나 가족들을 불러 모아서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도록 호출을 당해서 서울에서 시골까지 8시간씩 자동차를 몰고 다녀온 것들을 기억해냈다.

 

이론적 근거

 B씨는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암으로 죽어가는 할아버지 옆에서 3년 동안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 보았고 중학교 2년동안에는 1년간 할아버지 위패가 모셔진 빈소에서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보면서 지냈고 중학교 3학년 쯤에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갔다가 죽은 소녀의 영정 사진을 보았고 또 다시 놀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6촌 형님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것을 기억했다. 6촌 형님은 해골이 되어 수염을 깍지도 않고 뼈만 남아서 죽어가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대학 때는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려져 돌아가셨고 결혼 후에 4년 만에 39세의 나이로 처의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서 3일 동안 빈소로 마련된 곳에서 B씨 가족이 잠을 자면서 죽은 귀신이 달라붙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1달 후에 공황 공격을 받았다. 이후에 1년 동안 정신과 한의원과 최면 치료사 등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공황장애를 치료하려고 하고 있던 중에 2년 전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B씨는 지금까지 죽음의 연속에서 죽음 공포증에 휩싸여 살아온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B씨는 위와 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들을 지금까지 치료자 한데 오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가족들 즉 아버지, 어머니 혹은 할머니나 형님이나 동생들 한데도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부인에게도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그러한 고통과 두려움과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들을 가족들 특히 부인에게 하라고 했다. 부인에게 이런 어린 시절의 죽음 공포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공황 장애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심한 불안증세들은 감소되어가고 있었으나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오게된 것이었다.

 B씨의 꿈은 지금까지 1년 동안 B씨가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밝혀주게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왜 B씨가 지금까지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자에게 그 영정 사진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고 했을 때 B씨는 그 꿈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가 1년이 지나가면서 B씨는 생리적 긴장이 많이 감소되어갔고 몸이 피곤하거나 조그만 스트레스에 몸이 직접 영향을 받는 현상이 밝혀지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긴장을 풀도록 매일 같이 운동을 해 온 것이 1년 정도 지나가면서 몸의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자신감도 찾아가고 있었으나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자주 찾아오게 되어 무엇인가 아직도 뿌리가 빠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도 B씨도 동감을 표현하고 계속해 6개월의 심리치료를 더 받기로 한 것이었다.

 B씨의 꿈은 이것을 밝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그 꿈이 있고 나서 B씨가 어린 시절에 잊어 버리고 무의식 속에 억압해 두었던 영정 사진이 등장하면서 어린 시절의 상처 기억들을 다시 다루어가기 시작했다. 그 소녀의 영정 사진에서 받은 죽음 공포와 에로틱한 이미지 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할아버지 영정 사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말로써 표현하게 하고 그 사촌 형님의 해골이 되어가면서 죽어가는 모습에서 받은 공포적 두려움 등을 말로써 표현하게 되면서 B씨는 죽음 공포증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늘 1주일 후에 치료 시간에 오면 그 주일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조금만 몸이 깨운하지 않고 뻐근하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닌가? 지나가는 장의사 차를 보면 내가 오늘 죽음을 예견하는 것이 아닌가? 조그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 신문에 사고, 사망 기사들을 보면 오늘 내가 죽을 것이 아닌가? 등등의 죽음 공포증이 영저 사진에 대한 공포증을 이야기하면서 더 이상 B씨의 입에 달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B씨가 인정을 하고 이제 죽음 공포증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치료 결과

 치료자는 B씨의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증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한데서 동일시된 것임을 B씨가 알 게 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5명의 손자들 중에서 B씨가 가장 영리하고 똘똘하다고 칭찬을 많이 했고 B씨는 할머니가 집안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보다도 할머니를 더 존경하고 따랐다. 할머니는 심한 불안증으로 할머니가 죽음 공포증 속에서 살아온 것이 하나씩 치료 과정에서 밝혀졌다. 할머니는 B씨가 어린 시절에 가족들이 아프면 무당을 불러서 굿을 자주 했고 집에 상낭(집의 핵심 대들보의 사투리)을 바꾸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해가 온다고 몇 번이고 뜯어고쳐서 비가오면 지붕에서 비가 새고 대문을 여러 번 뜯어고쳐서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다 대문에 부디쳐서 몸에 부상을 입은 적도 있고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할아버지가 무덤 옆에 포풀라 나무가 그늘이 져서 저승에서 괴로워한다고 밥중에 B씨를 깨워서 몇 일에 걸쳐서 그 큰 포풀라 나무르 베면서 기차가 기적 소리가 나면 넘어뜨리게 한 것들을 기억했다. 그 중에서도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죽음에 대한 공포증 때문에 어머니가 옆을 떠나면 두려워서 어머니를 꽉 붙잡고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할머니 옆에 있게 했다. 몇 일 전에 B씨는 자신이 직장에서 돌아와서 몸이 피곤해서 집에서 쉴 때 죽을 것만 같아서 부인이 운동을 하러 가지 말고 자신이 옆에 있어주었으면 하고 마음 속에서 생각을 했으나 결국은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 것을 치료자가 기억을 하고 B씨가 할머니가 한 행동과 유사함을 지적했을 때 B씨는 이것을 인정했다.

 B 씨는 할머니의 죽음 공포증과 심한 불안증(일반화된 불안장애)를 고스란히 그대로 동일시해서 B씨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음을 알도록 했다. 존경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B씨에게 투사 동일시(할머니가 원하는 대로 B씨가 따라간 것으로 서로 무의식적으로 기대를 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게 되는 심리적인 기재를 전문 용어로 투사 동일시라고 한다)를 한 것이었다. B씨는 이제야 할머니가 왜 그렇게 조그만 일에도 안전부절 못하고 늘 무당을 부르고 굿판을 벌리고 몸이 조그만 이상해도 온갖 종류의 약물을 복용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 공포증과 불안증이 B씨에게 대물림이 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B씨는 나이가 40대 중반을 기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여리고 죽음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은 B씨의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아 즉 초등학교 시절과 중고등학교 시절의 자아가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를 누구에게도 한마디도 못하고 목이 졸려서 긴장이 한계점이 이르게 된 것이 공황장애였고 지금의 죽음 공포증이된 것을 깨닫게 되었다.

 B씨는 이제 마음 속에 담아둔 어린 시절의 자아가 밖으로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상상과 죽음 공포를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부인에게 치료자에게 한 이야기들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게 되면서 B씨의 생리적으로 쌓인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써 B씨는 설날 연휴 때 1주일간 시골 고향에 차례를 지내려 갔다가 처가집을 들러서 쉬지 않고 자동차를 운전하고 난 이후에 휴가가 끝났을 때 몸이 아프다거나 몸에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다. 혼자서 시골까지 운전을 8시간씩 왕복으로 하고도 몸에 이상을 느끼지 않고 몸이 건강해졌음에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치료자에게 1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B씨는 치료 초반기에는 여름 휴가나 설, 명절에 고향에 다녀오면 반드시 1주일 동안 몸의 이상 때문에 휴유증을 앓아온 것을 치료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B씨의 공황장애를 정신분석적으로 치료한 치료 과정을 상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의 치료 사례에 들어가 보세요.